1919년 <의리적 구토> 이후 1924년에 조선의 자본과 인력만으로 <장화홍련전> 이 제작되었습니다. 또 1926년에 나운규의 <아리랑>이 개봉했습니다. 아리랑은 조선 무성영화의 황금기를 열었으며 만족영화의 기원으로 평가 받기도 하였습니다.
1919년 <의리적 구토> 이후 1924년에 조선의 자본과 인력만으로 <장화홍련전> 이 제작되었습니다. 또 1926년에 나운규의 <아리랑>이 개봉했습니다. 아리랑은 조선 무성영화의 황금기를 열었으며 만족영화의 기원으로 평가 받기도 하였습니다.